"알았다구 글쎄… 잔소리 좀 작작해."
어머니의 당부는 얼마나 부질없는 것 이었던지,
아버지는 장에 갔다 돌아 오실 때면
언제나 거나하게 한 잔 걸치고 노래를 흥얼거리며 돌아 오셨습니다.
밤 늦게까지 뜨게질을 하며 아버지를 기다리던 어머니…
멀리서 술에 취해 비틀거리
며 걸어오는 아버지 손에는 으레 검정 비닐 봉지가 들려있었습니다.
무뚝뚝한 아버지였지만,
집에서 기다리고 있을 딸에게 주려고
늘 이것저것 사들고오셨습니다.
그 비닐 봉지 안에는 비틀비틀 걸어 오다 부딪쳐 터져버린 감이며
부서진 생과자,
다 식어빠진 호빵 같은 것들이 들어 있었습니다.
소 판 돈을 얼마나 축냈는지는 알 수 없지만
돈을 건네 받던 어머니의 슬픈 표정은
지금도 잊혀지지가 않습니다.
그렇게 서글픈 세월이 흐르고 흘러
아버지는 머리카락이 하얗게 센 칠순의 노인네가 되었고
나는 시집을 가서 애엄마가 되었습니다.
먹고 살기 바쁘다는 핑계로
자식들은코빼기도 보이지 않고 지내는 동안
어머니는 큰 사고를 당해 하반신을 못 쓰게
된 지 벌써 10년 세월이 흘렀습니다.
어머니가 몸져 눕게 되자
라면 하나도 끓일 줄 모르시던 아버지는
살림을 도맡아 하게 되었습니다.
그 후로 싱크대 위는 거울처럼 반짝반짝 빛이 났고 아무리 바빠도
세금 한번 밀린 적이 없다 하셨습니다.
믿기 힘들었지만 아버지는 예전의 아버지가 아니었습니다.
얼마전, 나는 아주 오랜만에 시골 친정집을 찾아 갔습니다.
방안에 들어 서자 물컵에 꽂혀 있는
장미 한 송이가 눈에 들어 왔습니다.
"어머, 웬 장미유? 그거 참 별일이네……."
"으응… 그거 니 아부지가 나 보라고 꺽어 오셨댄다."
어머니는 볼품없이 시들어 버린 장미 한 송이를 애지중지 했습니다.
"아휴… 다 시들었는데 그만 버리지……."
내말에 어머니는
시든 장미를 물끄러미 바라보면서 말씀 하셨습니다.
"아버지의 마음인데 어떻게 버리니……."
순간 나는 가슴이 뭉클해 졌습니다.
아버지는 젊은 날 어머니 가슴에 박았던 못을
하나하나 빼주고 계셨던 것 입니다.
아버지와 어머니의 애틋한 마음을 생각하니
그 시든 장미 한 송이가 어찌나 고와 보이던지…
나도 모르는새에 입가에 미소가 번졌습니다.
(TV동화 행복한 세상 5권중 인천시 서구 석남동 김은경씨 실화)